외신들이 있어도 한국 기자들이 한국적 시각에서 게이트키핑한 뉴스들은 한국인들에게 태국과 동남아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효율적으로 넓혀 주었다. 한류는 실제로 확산·진화하고 있는지, 한국 화장품과 라면, 딸기가 정말 프랑스, 일본, 호주 제품 등을 각각 제치고 태국인들의 최애 품목이 되었는지, 한국인과 한국 기업이 어떻게 대접받고 안전하게 살아가는지 등은 로이터나 방콕포스트가 다루는 주요 뉴스 아이템이 아니다.
한국 특파원들이 선별해 본국에 송고하는 해당 국가의 정치·사회·문화 뉴스는 한국인들이 미래의 먹거리를 찾아보고 해외 진출의 기회를 엿보는 데에도 믿을 만한 참고 자료가 됐을 것이다.
한국 특파원들이 하나둘씩 짐을 싸 돌아가면서 그 부재감이 조금씩 느껴지는 듯하다.
한국 온라인을 통해 확인하게 되는 태국 관련 뉴스에는 한국인이 연루된 마약, 온라인 사기범 관련 뉴스가 부쩍 늘었다. 태국 경찰의 배포 자료를 근거로 외신을 한 번 더 거쳐 전해질 수밖에 없는 내용들이다. 실제로 그렇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방콕 한국식당에서 마주치는 낯선 한국인들과 태국이 전보다 무섭게 느껴진다.
최근 엄청난 무기가 발견되며 국제 테러조직과의 연관 가능성이 높은 중국인 남성이 태국에서 체포됐을 때도 그랬다. 이 중국인 남성이 한국 굿즈 모자를 쓰고 경찰에 출두하자, 이를 발견한 한국 언론들은 가십성 화제에 몰두했다. 이 때문에 태국 내 한국 정부 관련 기관들은 태국 언론들에게 중국 남성이 쓴 모자를 모자이크 처리해 달라고 요청하느라 시간을 써야 했다. 미국 굿즈 티셔츠와 모자를 썼어도 미국 언론들이 이렇게 보도하고,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태국이 최근 코로나 시기 세계 93개국에 부여했던 무비자 체류 기간을 60일에서 30일로 줄이자, 적잖은 한국 언론들은 ‘한국인에게 미칠 영향’을 우려하는 기사를 내 혼선을 주었다. 한국은 1981년 양국 협정에 의해 90일까지 무비자 체류가 가능하다. 주태국 한국대사관은 협정이 제도보다 우선하므로 한국인에게는 영향이 없다는 별도 공지문을 냈다. 현지 확인만으로도 간단히 팩트체크할 수 있는, 훈련받은 기자들이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례 가운데 하나다.
태국 주재 한국 특파원들이 영영 귀국하게 된 이유는 어쩌면 태국에 그 ‘원죄’가 있을지도 모른다. 태국은 정치적 불안정과 함께 아세안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경제성장률을 보이며 베트남에도 추격당하고 있다. 그럼에도 자국 산업 보호에 전념해 외국인에 대한 규제 업종이 많고 투자 제한도 커, 거주 한국인의 수가 크게 늘지 않고 있다. 번창했던 관광업 종사 환경도 예전만 못하고, 바트화는 치솟고 물가도 높다.
그렇더라도 태국의 중요성이 간과될 수는 없다. 6·25 참전국이라는 ‘피의 동맹’은 양국 국민의 상호 90일 무비자 체류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 중국, 일본인은 물론 그 어떤 유럽 국가 사람도 태국에 무비자로 연장신청없이 30일 이상 머무를 수 없다.
아세안의 중심이라는 지정학적 위치, 타국에 비해 잘 갖춰진 통신·도로·물류 인프라는 한국 언론 지국 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와 경제가 아세안으로 나아가는 동맥 같은 역할을 해준다. 아세안은 세계 최대 인구 대국인 인도와 중국 사이에 위치해 있으니, 미래 한국의 먹거리가 있다는 한때의 ‘남방정책’도 틀린 구석이 없다.
가짜 정보와 가짜 뉴스에 AI까지 등장해 혼란이 커지는 가운데, 한국 중앙언론 매체가 현지에 없다는 것은 우선 태국에 손해이고, ‘깜깜한 태국’을 맞이해야 하는 한국인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인심도 쌀독에서 난다’니 언론사들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다만 45년간 30여 명의 태국 특파원들이 걸었던 그 짧지 않았던 여정의 의미와 이유가 반추되기를 바란다. 위험 상황과 재난 속에서도 마이크와 펜을 들었던 성실한 태국 특파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Har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