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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국에서 사라지는 한국 중앙언론 특파원

조회수 : 517 2026.05.28

 


태국에서 한국 중앙언론 특파원 지국이 45년 만에 모두 폐쇄된다.
유일하게 남아 있던 KBS 방콕지국이 올해 10월 철수하는 것으로 알려지면서, 이제 태국에는 한국에서 파견된 특파원이 자취를 감추게 됐다.
한국이 태국과 상호 90일 무비자 체류 협정을 맺던 1981년, 연합뉴스가 처음으로 태국 방콕에 한국 상주 특파원을 파견했다. 이어 1990년에는 KBS, 1993년에는 MBC가 방콕지국을 설립했으나, 근년 들어 하나둘 한국으로 철수했다.
MBC는 15년 만인 2018년, 연합뉴스는 44년 만인 지난해 6월 지국을 폐쇄했다. KBS가 올해 36년 만에 방콕지국 문을 닫으면 태국 주재 한국 특파원은 45년 만에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1989년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뤄졌고, 한국 경제가 비약적인 발전 궤도에 올라서던 시기에 맞춰 한국 방송사들도 해외 특파원을 내보내기 시작했다. 언론의 최전성기라 언론사들의 살림도 넉넉하던 때였고, 해외 정보의 다양성이 한창 요구되던 시기이기도 했다.
태국 특파원들은 아세안 중심에 있는 태국의 지정학적 위치에 걸맞게 취재 범위가 꽤 넓었다. 특히 방송사 특파원들에게는 베트남, 인도네시아, 필리핀 등 동남아시아는 물론 호주와 뉴질랜드까지 취재 영역이었다. 요즘 같은 때에는 중동전쟁 한가운데로도 날아간다. 해당 국가의 내부 상황과 쿠데타 등 정치·사회 문제, 지진과 쓰나미 등 자연재해, 현지 경제 상황도 이들을 통해 한국에 전해졌다.
조선일보와 중앙일보는 태국에 특파원을 파견한 적은 없었지만, 쿠데타 같은 큰 변고라도 생기면 홍콩 특파원들이 득달같이 방콕으로 달려오던 기억이 있다. 2014년 아세안 경제공동체 출범을 앞두고 KBS는 방콕지국을 강화해 특파원을 증원하기도 했다.


상주 특파원 지국에 경제 논리가 적용되기 시작한 시점은 언론 환경의 변화와 맞물린다. 특히 SNS의 일상화로 만인이 기자인 세상이 되면서, 언론사가 생산하던 해외 뉴스에도 예전만큼의 희소가치가 사라진 것이 사실이다. 언론사들이 허리띠를 졸라매야 하는 상황에서 해외 지국 운영은 쉽지 않게 됐을 것이다.

하지만 어떤 시절이든 경제 문제가 없던 적은 없다. 그 어려운 1980년대부터 무려 45년 동안 한국 중앙언론들이 동남아에서, 그것도 태국을 꼭 집어 30여 명에 이르는 특파원을 보낸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UN 등 수많은 국제기구가 베트남도 싱가포르도 아닌 태국 방콕에 거점을 둔 것은 무슨 까닭일까?
태국 방콕은 1970년대 인도차이나 전쟁 당시부터 외신들이 동남아시아 전역을 커버하기 위해 거점으로 삼은 동남아 최대의 미디어 허브였다.  방콕 외신기자협회(FCCT: Foreign Correspondents' Club of Thailand) 전체회원수는 800명에 이르며, 풀타임 상주 외신기자(Correspondents) 및 뉴스룸 소속 전문 인력은  180여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로이터, AP, AFP,  BBC, 니케이 아시아, 블룸버그, 알자지라, 뉴욕타임스,  NHK, 요미우리, 아사히, 스트레이츠 타임스 등을 비롯한 수많은 외신이 여전히 태국에 터를 잡고 있다.


외신들이 있어도 한국 기자들이 한국적 시각에서 게이트키핑한 뉴스들은 한국인들에게 태국과 동남아에 대한 인식의 지평을 효율적으로 넓혀 주었다. 한류는 실제로 확산·진화하고 있는지, 한국 화장품과 라면, 딸기가 정말 프랑스, 일본, 호주 제품 등을 각각 제치고 태국인들의 최애 품목이 되었는지, 한국인과 한국 기업이 어떻게 대접받고 안전하게 살아가는지 등은  로이터나 방콕포스트가 다루는 주요 뉴스 아이템이 아니다.
한국 특파원들이 선별해 본국에 송고하는 해당 국가의 정치·사회·문화 뉴스는 한국인들이 미래의 먹거리를 찾아보고 해외 진출의 기회를 엿보는 데에도 믿을 만한 참고 자료가 됐을 것이다.

한국 특파원들이 하나둘씩 짐을 싸 돌아가면서 그 부재감이 조금씩 느껴지는 듯하다.
한국 온라인을 통해 확인하게 되는 태국 관련 뉴스에는 한국인이 연루된 마약, 온라인 사기범 관련 뉴스가 부쩍 늘었다. 태국 경찰의 배포 자료를 근거로 외신을 한 번 더 거쳐 전해질 수밖에 없는 내용들이다. 실제로 그렇게 됐는지는 모르지만, 방콕 한국식당에서 마주치는 낯선 한국인들과 태국이 전보다 무섭게 느껴진다.
최근 엄청난 무기가 발견되며 국제 테러조직과의 연관 가능성이 높은 중국인 남성이 태국에서 체포됐을 때도 그랬다. 이 중국인 남성이 한국 굿즈 모자를 쓰고 경찰에 출두하자, 이를 발견한 한국 언론들은 가십성 화제에 몰두했다. 이 때문에 태국 내 한국 정부 관련 기관들은 태국 언론들에게 중국 남성이 쓴 모자를 모자이크 처리해 달라고 요청하느라 시간을 써야 했다. 미국 굿즈 티셔츠와 모자를 썼어도 미국 언론들이 이렇게 보도하고,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태국이 최근 코로나 시기 세계 93개국에 부여했던 무비자 체류 기간을 60일에서 30일로 줄이자, 적잖은 한국 언론들은 ‘한국인에게 미칠 영향’을 우려하는 기사를 내 혼선을 주었다. 한국은 1981년 양국 협정에 의해 90일까지 무비자 체류가 가능하다. 주태국 한국대사관은 협정이 제도보다 우선하므로 한국인에게는 영향이 없다는 별도 공지문을 냈다. 현지 확인만으로도 간단히 팩트체크할 수 있는, 훈련받은 기자들이 있었다면 일어나지 않았을 사례 가운데 하나다.

태국 주재 한국 특파원들이 영영 귀국하게 된 이유는 어쩌면 태국에 그 ‘원죄’가 있을지도 모른다. 태국은 정치적 불안정과 함께 아세안에서 가장 낮은 수준의 경제성장률을 보이며 베트남에도 추격당하고 있다. 그럼에도 자국 산업 보호에 전념해 외국인에 대한 규제 업종이 많고 투자 제한도 커, 거주 한국인의 수가 크게 늘지 않고 있다. 번창했던 관광업 종사 환경도 예전만 못하고, 바트화는 치솟고 물가도 높다.

그렇더라도 태국의 중요성이 간과될 수는 없다. 6·25 참전국이라는 ‘피의 동맹’은 양국 국민의 상호 90일 무비자 체류로 이어지고 있다. 미국, 중국, 일본인은 물론 그 어떤 유럽 국가 사람도 태국에 무비자로 연장신청없이  30일 이상 머무를 수 없다.

아세안의 중심이라는 지정학적 위치, 타국에 비해 잘 갖춰진 통신·도로·물류 인프라는 한국 언론 지국 뿐만 아니라 한국 문화와 경제가 아세안으로 나아가는 동맥 같은 역할을 해준다. 아세안은 세계 최대 인구 대국인 인도와 중국 사이에 위치해 있으니, 미래 한국의 먹거리가 있다는 한때의 ‘남방정책’도 틀린 구석이 없다.

가짜 정보와 가짜 뉴스에 AI까지 등장해 혼란이 커지는 가운데, 한국 중앙언론 매체가 현지에 없다는 것은 우선 태국에 손해이고, ‘깜깜한 태국’을 맞이해야 하는 한국인에게도 불행한 일이다.
‘인심도 쌀독에서 난다’니 언론사들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는 바는 아니다. 다만 45년간 30여 명의 태국 특파원들이 걸었던 그 짧지 않았던 여정의 의미와 이유가 반추되기를 바란다. 위험 상황과 재난 속에서도 마이크와 펜을 들었던 성실한 태국 특파원들에게 경의를 표한다.  <Har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