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한 은행 앞마당입니다. 사람이 아닌 수십 켤레의 신발들이 새벽 댓바람부터 칼같이 줄을 맞춰 놓여있습니다. 신발주인들은 주변에서 맨발로 서성이며 쉬고 있습니다.
태국 정부가 내수 경제를 살린다며 역대급 민생 부양책을 발표한 뒤의 진풍경입니다.
생필품 등을 구입할 때 본인이 40%만 내면 정부가 60%를 부담해주는 ‘타이추어이타이플러스’ 제도인데 4개월간 1인당 총 4,000바트, 한화 약 18만 원 정도를 지원받게 됩니다.
그런데 태국 정부는 디지털앱을 통해서만 지원신청을 할 수 있도록 했고, 첫날부터 대혼란이 일어났습니다.
비밀번호를 잊어버리거나 전화번호가 바뀌어 정부 앱 등록이 안 되는 디지털 소외 계층, 특히 노인들이 본인 인증을 받기 위해 은행으로 대거 몰려든 겁니다.
새벽 3시부터 줄이 늘어서 은행이 번호표를 배부할 상황도 못됐습니다.
여기서 태국인들 특유의 묘책이 등장합니다. 바로 자신의 신발을 대신 줄 세워둔 것입니다. 태국 문화에서 발과 신발은 가장 '낮은 것'으로 여겨져 타인이 손대거나 치우지 않는 완벽한 담보물이라는 묵시적 규칙이 있습니다. 사람이 많이 모이는 곳에서는 신발 줄을 세우는 광경이 종종 일어납니다.
4천바트를 위해 태국 곳곳에서 목격된 이번 신발줄의 행렬은 태국 서민 경제의 절박함과 세대간 디지털 격차가 만들어낸 서글픈 단면입니다. <Har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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